http://local.naver.com/nboard/read.php?board_id=li_hottalk&page=2&nid=42247 에서 퍼온 지심도 여행기
photo_nc2u님께 감사. 나도 떠나고 싶다. T.T (스크롤 압박 마이 있음)
함께 떠나는 일행중에는 이런 날씨가 오히려 돌아다니엔 더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진에 욕심을 내는 나같은 사람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은 날씨였다.
뙤약볕이 내리쬐어 땀에 흠뻑 젖더라도 맑고 화창한 날씨이기를 기대 했었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지심도행 선박 매표소.
하루에 다섯 번 운행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지심도에서 보내기 위해
우리는 8시에 출발하는 첫배를 타기로 했다. 지심도 까지의 왕복 요금은 1만원이다.
지심도는 지난밤 묵었던 숙소 창밖에서도 보일만큼 육지에서 가까운곳에 있는 섬이다.
장승포항에서 출발한지 채 20분이 지나지 않아 지심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민박집 약도 하나만 크게 붙어 있다. 왜 다른 시설에 관한 내용은 없을까 의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게 다였다. 식당, 횟집, 편의점, 마트, PC방, 현금인출기, 자동차, ... 이런건 지심도에 없다.
하루이틀 묵고갈 민박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섬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관광지엔 외지인들이 아무렇게나 지어놓은 숙박, 유흥 시설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마련이지만 지심도엔 현지 주민들이 직접 거주하면서 숙박을 치는 생활형 민박이 전부다.
지심도는 국방부 소유의 섬으로 개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착장에서 부터 이어지는 저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도 없는 이 섬의 이곳 저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그렇게 오랜기간 사람들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았던 탓에 지심도는 푸른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니, 섬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니 지심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원시림이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빽빽한 나무 숲 사이로 두사람이 나란히 걸을만한 아담한 오솔길이 나있다.
동백나무가 맞나 싶을만큼 굵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면 그보다 더 굵은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이른 아침의 울창한 대나무 숲속에서는 맑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곧게 뻗은 대나무 줄기와 잎사귀에는 아침 이슬이 내려 앉았다.
숲길을 걷다보면 몇 발자욱 앞에서 뭔가 펄쩍펄쩍 뛰어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니 무당개구리였다. 지심도에는 무당개구리가 굉장히 많았다.
풀밭에도 뭔가 꿈틀거리길래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봤더니 큰 달팽이였다.
그 외 하늘소, 사슴벌레 등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벌레들, 그리고 풀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닐때마다 이런 예쁜 풀꽃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름을 모르는게 참 많다.
그래서 식물 도감을 한권 사기로 했다.
지심도는 일제 강점기동안 일본군의 전략적 요새로 이용되었는데,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군들이 만든 포진지이다. 이런 진지가 여러곳 있고, 탄약고도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걷다 보면 섬의 정상에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이르게 된다.
이 탁트인 잔디밭은 원래 비행기의 이착륙을 위한 활주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아직 단 한번도 이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린적은 없다고 한다.
잔디밭 한쪽 옆엔 벤치가 놓인 망루가 있다. 이 망루는 동쪽을 향하고 있어 일출을 보기에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일출을 보러갈 결심을 했지만 밤사이에 비가 내렸고 하늘은 더 흐려서 일출을 볼 수 없었다.
다른 일행들이 잔디밭에 앉아 멀리 바다를 보며 땀을 식히고 있다.
지심도의 해안은 산지가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는 해식절벽이 발달해 있다.
어떤 섬에 해식절벽이 발달해 있다는 것은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지만 물놀이를 할만한
평평한 해변이나 해수욕장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식절벽은 울릉도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실제로 울릉도도 그랬고, 지심도에도 해수욕장이 없었다.
관광 안내지도를 살펴보니 몽돌해수욕장이라는 곳이 있길래 내려가 봤다.
사실 해수욕장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물놀이를 할만한 곳이이기는 했다.
작고 동그란 자갈들이 깔려있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이었다.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다녔고, 바람조차 습하고 미지근 했다.
그런데 물은 어찌나 맑고 차갑던지 텀벙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지심도를 한바퀴 둘러보는데는 넉넉잡고 한시간 반정도면 충분한 작은 섬이었다.
숲길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민박집으로 왔다.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곳에 있는 민박집이다.
이 민박집은 직접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을 만큼 각 방마다 취사 시설이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장을 봐오지도 않았고, 또 직접 해먹기는 좀 번거로워서 미리 식사를 주문해두었다.
바다가 보이는 이 휴게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식사 비용은 한끼에 7천원 정도인데, 주인 아저씨가 직접 잡은 자연산 생선을 요리해준다.
이날 점심메뉴는 생선 조림과 볼락구이였는데 반찬도 생선 조림도 맛있었지만
특히 볼락구이가 맛있었다.
배는 부르고 딱히 할게 없었는데 일행중 누군가 제안을 했다.
아침일찍 부터 움직이느라 좀 힘들었는데 낮잠 좀 자고 오후에 낚시를 하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낮잠이 아니라 그냥 잠이었다.
바닷가로 내려간 시간은 오후 6시가 훌쩍 넘었을 때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낚시대를 드리운 모습들이 보였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일정표를 받았는데 일정표에 재밌는 부분이 있었다.
'전날 낚시한 고기로 아침식사'
이부분에서 우리는 다들 웃었다.
고기를 잡지 못하면 아침을 굶어야 하는걸까?
정말 우리가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우리 일행중엔 나를 제외하곤 바다낚시를 해본사람들이 없었다.
"왔다아!"
정말 우리가 잡은 고기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낚시대를 드리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마다 하나 둘 고기를
낚아올리기 시작했다. 제철이라는 전갱이가 주로 잡혔다.
나는 전갱이에 대한 남다른 환상(?)을 갖고 있다.
어릴때 동물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돌고래나 물개들을 훈련시킬때
조련사들이 '잘했어' 하며 던져주는 먹이가 바로 전갱이였다.
돌고래와 물개들은 그 전갱이 한마리 더 얻어 먹겠다고 필사적으로 재주를 부렸다.
그모습을 보던 나는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전갱이가 머꼬? 와 내는 전갱이 안해주노?"
낚시대는 민박집에서 빌려주는 대낚시를 사용했다.
바늘에 크릴새우를 끼워 미끼가 바닥에 닿도록 낚시대를 낮게 드리운다.
처음 몇 번은 미끼만 따먹히고 빈 낚시대를 들어올리기가 일쑤다.
그러나 몇 번 해 볼수록 조금씩 감각들을 알아가게 된다.
뭔가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낚시대를 타고 손에 전해진다.
낚시대를 살짝 옆으로 채면 이내 '피잉~' 하면서 낚시줄이 수면과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낸다.
물고기가 이리저리 헤엄치는 쪽으로 낚시줄이 움직이고
천천히 낚시대를 들어올리면 그 끝에 살아서 펄떡거리는 싱싱한 바다가 딸려 올라온다.
"아~ 이게 바로 그 손맛 이라는 거구나!"
낚시를 처음 해보는 일행이 신기한듯 얘기한다.
딱히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사람이나, 몇 번 해본 사람이나
모두 비슷하게 고기를 잡았다.
이날 우리 일행은 1시간 정도 낚시를 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마다 낚시의 오묘한 재미를 느꼈고,
스무마리 정도의 전갱이와 기타 물고기들을 잡았다. 얼마든 더 잡을 수 있었지만 더 많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잡기로 했다.
처음 해본 낚시질로 잡은 고기 때문에 다들 기분이 들떴다.
일손이 모자랐던 민박집 아저씨는 옆집 아저씨에게 생선 손질을 부탁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회를 뜨는 모습을 다들 신기한듯 지켜보고 서 있었다.
생선 냄새를 맡았는지 고양이도 옆에 다소곳이 쪼그리고 앉아
애처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민박집 아저씨가 별식을 만들어주신다기에 뭘 하시나 했더니 전갱이 초밥을 만들고 계신다.
전갱이는 고등어나 갈치처럼 잡은 곳이 아니고는 회로 먹기 어려운 생선이다.
전갱이 회는 울릉도에서 한번 먹어봤고, 초밥은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날 또하나의 특별한 메뉴는 역시 제철을 맞은 돌멍게.
우리 일행을 위해 해녀 아주머니께 미리 부탁을 해 놓으셨다고 한다.
내가 직접 잡은 전갱이로 만든 초밥과 회, 그리고 돌멍게까지. 정말 특별하고 맛있는 저녁 식사였다.
앞으로 어디로 여행을 다니면 이렇게 맛있는 전갱이 초밥을 또 맛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돌고래와 물개들의 심정을 백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옆방에 묵고 있던 여대생들에게도 내가 직접 잡은거라고 생색을 내며 초밥을 한접시 나눠줬다.
민박집 아저씨들과 함께 소주도 한잔 곁들여 긴 시간동안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지심도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이날은 빗소리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요란한 새소리에 잠을 깼다. 이른 아침부터 아저씨의 손길이 바쁘다.
이날은 지심도의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인 재래식 뜰채 낚시를 채험하기로 했는데
낚시를 하기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가냐고 물었더니 고기도 밥때가 있고 특히 맛뵈주고 싶은 고기가 따로 있다고 했다.
뜰채 낚시는 다섯개의 긴 대나무와 큰 그물, 그리고 새우등의 미끼를 준비하면 된다.
옆방의 학생들이 아저씨를 도와 함께 뜰채를 조립하고 있다.
한쪽에서 뜰채를 조립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뜰채를 담글 자리 근처에 미끼를 뿌리며
근처의 물고기들을 꼬시고 있다.
뜰채를 담그고 그 위에 충분히 미끼를 뿌려준 뒤 물고기들이 몰려들기를 기다린다.
십여분쯤 지났을까? 뜰채를 들어올려보지만 헛탕이었다.
우리 일행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과연 저렇게 해서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요?"
"차라리 어제처럼 낚시를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자리를 잘못 잡은것 같다며 장소를 옮겼다.
또 같이 뜰채를 조립하고 물속에 담갔다.
"자, 잘 보고 있어요."
"어어, 온다 온다!!"
우와! 아까와는 달리 제법 많은 고기들이 뜰채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자, 같이 들어올려요!"
뜰채의 그물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순간 '파닥파닥파닥' 은빛의 반짝거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신기한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한번 동요하기 시작했다.
"낚시질은 헛빵이네요."
"그러게요 이거 한방이면 끝인데..."
이날 잡아올린 물고기도 대부분은 전갱이였다.
"오늘은 이 자리돔을 좀 잡아서 해드릴려고 했는데 별로 없네요."
옆방 학생들이 아저씨가 갯바위에서 따온 것들을 담아놓은 통을 신기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
고동, 따개비, 거북손등을 제법 많이 따오셨다.
"식사 하시고 간식으로 삶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이날 아침엔 또 조금전에 잡은 전갱이 매운탕과 볼락 회로 푸짐한 아침을 먹었다.
"이런 식사나 체험들은 저희들을 위한 건가요? 아니면 누구나 다 경험 할 수 있는건가요?"
"아닙니다. 저희 집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다 똑같이 해드립니다. 다른데도 비슷합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민박집 안주인께서 아까 그 고동을 삶아서 내주셨다.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거제도로 나가야 했는데 배를 기다리는 동안 야금야금 고동을 파 먹었다.
이런데 와서 먹으니까 정말 별게 다 맛있었다.
배를 타려고 선착장에 내려왔는데 저만치에서 자맥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보였다.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이기 때문일까, 이런 모습은 늘 새삼스럽고 진귀한 풍경처럼 느껴진다.
'아, 정말 지심도에도 해녀가 있구나.'
지심도는 내가 지금껏 여행했던 우리나라의 다른 섬들과는 또다른 느낌의 섬이었다. 이 단편적인 여행기가 보는이에게 지심도를 어떤 모습으로 비춰줄지 궁금하다. 지심도는 화려하고 예쁜 풍경이나 잘 갖춰진 시설들을 선호하는 여행자에게 권할만한 곳은 아니다.
매년 12월 부터 이듬해 4월까지 동백꽃이 온 섬을 뒤덮는 다고 해서 동백섬이라고도 부른는 이 섬의 '지심도'라는 이름은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닯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섬을 떠나 올때 '이름 참 잘지었네' 하고 생각했다. 번잡한 생활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아무생각 없이 하루이틀 머리를 식히다 보면 마음도 홀가분하게 비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오는 섬, 처음 그대로의 자연과 생명들을 간직한 섬, 섬이 섬다운 섬에서 보낸 긴 하루를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글|사진 잠든자유)
photo_nc2u님께 감사. 나도 떠나고 싶다. T.T (스크롤 압박 마이 있음)
마음 비우고 오는 섬, 지심도 1박 2일
언제 부턴가 나는 섬 여행을 좋아하게 됐다. 섬은 당장 내 의지대로 벗어날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이지만 마음은 오히려 답답한 일상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자유로웠고,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한밤의 적막함은 처음엔 낯설고 불안했지만 이제는 그런 순간들이 그리워질 만큼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섬이 섬답지 않은 큰 섬은 더이상 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한국관광공사의 섬여행 팸투어 행사에 참여하기 전까지 나는 지심도라는 이름 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전에 충분히 자료조사를 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섬은 직접 들어가서 구석구석 돌아보지 않는 이상 그 실체와 느낌을 제대로 알 수 없다.
함께 떠나는 일행중에는 이런 날씨가 오히려 돌아다니엔 더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진에 욕심을 내는 나같은 사람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은 날씨였다.
뙤약볕이 내리쬐어 땀에 흠뻑 젖더라도 맑고 화창한 날씨이기를 기대 했었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지심도행 선박 매표소.
하루에 다섯 번 운행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지심도에서 보내기 위해
우리는 8시에 출발하는 첫배를 타기로 했다. 지심도 까지의 왕복 요금은 1만원이다.
지심도는 지난밤 묵었던 숙소 창밖에서도 보일만큼 육지에서 가까운곳에 있는 섬이다.
장승포항에서 출발한지 채 20분이 지나지 않아 지심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민박집 약도 하나만 크게 붙어 있다. 왜 다른 시설에 관한 내용은 없을까 의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게 다였다. 식당, 횟집, 편의점, 마트, PC방, 현금인출기, 자동차, ... 이런건 지심도에 없다.
하루이틀 묵고갈 민박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섬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관광지엔 외지인들이 아무렇게나 지어놓은 숙박, 유흥 시설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마련이지만 지심도엔 현지 주민들이 직접 거주하면서 숙박을 치는 생활형 민박이 전부다.
지심도는 국방부 소유의 섬으로 개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착장에서 부터 이어지는 저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도 없는 이 섬의 이곳 저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그렇게 오랜기간 사람들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았던 탓에 지심도는 푸른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니, 섬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니 지심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원시림이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빽빽한 나무 숲 사이로 두사람이 나란히 걸을만한 아담한 오솔길이 나있다.
동백나무가 맞나 싶을만큼 굵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면 그보다 더 굵은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이른 아침의 울창한 대나무 숲속에서는 맑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곧게 뻗은 대나무 줄기와 잎사귀에는 아침 이슬이 내려 앉았다.
숲길을 걷다보면 몇 발자욱 앞에서 뭔가 펄쩍펄쩍 뛰어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니 무당개구리였다. 지심도에는 무당개구리가 굉장히 많았다.
풀밭에도 뭔가 꿈틀거리길래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봤더니 큰 달팽이였다.
그 외 하늘소, 사슴벌레 등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벌레들, 그리고 풀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닐때마다 이런 예쁜 풀꽃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름을 모르는게 참 많다.
그래서 식물 도감을 한권 사기로 했다.
지심도는 일제 강점기동안 일본군의 전략적 요새로 이용되었는데,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군들이 만든 포진지이다. 이런 진지가 여러곳 있고, 탄약고도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걷다 보면 섬의 정상에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이르게 된다.
이 탁트인 잔디밭은 원래 비행기의 이착륙을 위한 활주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아직 단 한번도 이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린적은 없다고 한다.
잔디밭 한쪽 옆엔 벤치가 놓인 망루가 있다. 이 망루는 동쪽을 향하고 있어 일출을 보기에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일출을 보러갈 결심을 했지만 밤사이에 비가 내렸고 하늘은 더 흐려서 일출을 볼 수 없었다.
다른 일행들이 잔디밭에 앉아 멀리 바다를 보며 땀을 식히고 있다.
지심도의 해안은 산지가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는 해식절벽이 발달해 있다.
어떤 섬에 해식절벽이 발달해 있다는 것은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지만 물놀이를 할만한
평평한 해변이나 해수욕장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식절벽은 울릉도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실제로 울릉도도 그랬고, 지심도에도 해수욕장이 없었다.
관광 안내지도를 살펴보니 몽돌해수욕장이라는 곳이 있길래 내려가 봤다.
사실 해수욕장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물놀이를 할만한 곳이이기는 했다.
작고 동그란 자갈들이 깔려있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이었다.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다녔고, 바람조차 습하고 미지근 했다.
그런데 물은 어찌나 맑고 차갑던지 텀벙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지심도를 한바퀴 둘러보는데는 넉넉잡고 한시간 반정도면 충분한 작은 섬이었다.
숲길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민박집으로 왔다.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곳에 있는 민박집이다.
이 민박집은 직접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을 만큼 각 방마다 취사 시설이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장을 봐오지도 않았고, 또 직접 해먹기는 좀 번거로워서 미리 식사를 주문해두었다.
바다가 보이는 이 휴게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식사 비용은 한끼에 7천원 정도인데, 주인 아저씨가 직접 잡은 자연산 생선을 요리해준다.
이날 점심메뉴는 생선 조림과 볼락구이였는데 반찬도 생선 조림도 맛있었지만
특히 볼락구이가 맛있었다.
배는 부르고 딱히 할게 없었는데 일행중 누군가 제안을 했다.
아침일찍 부터 움직이느라 좀 힘들었는데 낮잠 좀 자고 오후에 낚시를 하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낮잠이 아니라 그냥 잠이었다.
바닷가로 내려간 시간은 오후 6시가 훌쩍 넘었을 때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낚시대를 드리운 모습들이 보였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일정표를 받았는데 일정표에 재밌는 부분이 있었다.
'전날 낚시한 고기로 아침식사'
이부분에서 우리는 다들 웃었다.
고기를 잡지 못하면 아침을 굶어야 하는걸까?
정말 우리가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우리 일행중엔 나를 제외하곤 바다낚시를 해본사람들이 없었다.
"왔다아!"
정말 우리가 잡은 고기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낚시대를 드리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마다 하나 둘 고기를
낚아올리기 시작했다. 제철이라는 전갱이가 주로 잡혔다.
나는 전갱이에 대한 남다른 환상(?)을 갖고 있다.
어릴때 동물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돌고래나 물개들을 훈련시킬때
조련사들이 '잘했어' 하며 던져주는 먹이가 바로 전갱이였다.
돌고래와 물개들은 그 전갱이 한마리 더 얻어 먹겠다고 필사적으로 재주를 부렸다.
그모습을 보던 나는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전갱이가 머꼬? 와 내는 전갱이 안해주노?"
낚시대는 민박집에서 빌려주는 대낚시를 사용했다.
바늘에 크릴새우를 끼워 미끼가 바닥에 닿도록 낚시대를 낮게 드리운다.
처음 몇 번은 미끼만 따먹히고 빈 낚시대를 들어올리기가 일쑤다.
그러나 몇 번 해 볼수록 조금씩 감각들을 알아가게 된다.
뭔가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낚시대를 타고 손에 전해진다.
낚시대를 살짝 옆으로 채면 이내 '피잉~' 하면서 낚시줄이 수면과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낸다.
물고기가 이리저리 헤엄치는 쪽으로 낚시줄이 움직이고
천천히 낚시대를 들어올리면 그 끝에 살아서 펄떡거리는 싱싱한 바다가 딸려 올라온다.
"아~ 이게 바로 그 손맛 이라는 거구나!"
낚시를 처음 해보는 일행이 신기한듯 얘기한다.
딱히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사람이나, 몇 번 해본 사람이나
모두 비슷하게 고기를 잡았다.
이날 우리 일행은 1시간 정도 낚시를 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마다 낚시의 오묘한 재미를 느꼈고,
스무마리 정도의 전갱이와 기타 물고기들을 잡았다. 얼마든 더 잡을 수 있었지만 더 많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잡기로 했다.
처음 해본 낚시질로 잡은 고기 때문에 다들 기분이 들떴다.
일손이 모자랐던 민박집 아저씨는 옆집 아저씨에게 생선 손질을 부탁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회를 뜨는 모습을 다들 신기한듯 지켜보고 서 있었다.
생선 냄새를 맡았는지 고양이도 옆에 다소곳이 쪼그리고 앉아
애처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민박집 아저씨가 별식을 만들어주신다기에 뭘 하시나 했더니 전갱이 초밥을 만들고 계신다.
전갱이는 고등어나 갈치처럼 잡은 곳이 아니고는 회로 먹기 어려운 생선이다.
전갱이 회는 울릉도에서 한번 먹어봤고, 초밥은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날 또하나의 특별한 메뉴는 역시 제철을 맞은 돌멍게.
우리 일행을 위해 해녀 아주머니께 미리 부탁을 해 놓으셨다고 한다.
내가 직접 잡은 전갱이로 만든 초밥과 회, 그리고 돌멍게까지. 정말 특별하고 맛있는 저녁 식사였다.
앞으로 어디로 여행을 다니면 이렇게 맛있는 전갱이 초밥을 또 맛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돌고래와 물개들의 심정을 백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옆방에 묵고 있던 여대생들에게도 내가 직접 잡은거라고 생색을 내며 초밥을 한접시 나눠줬다.
민박집 아저씨들과 함께 소주도 한잔 곁들여 긴 시간동안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지심도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이날은 빗소리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요란한 새소리에 잠을 깼다. 이른 아침부터 아저씨의 손길이 바쁘다.
이날은 지심도의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인 재래식 뜰채 낚시를 채험하기로 했는데
낚시를 하기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가냐고 물었더니 고기도 밥때가 있고 특히 맛뵈주고 싶은 고기가 따로 있다고 했다.
뜰채 낚시는 다섯개의 긴 대나무와 큰 그물, 그리고 새우등의 미끼를 준비하면 된다.
옆방의 학생들이 아저씨를 도와 함께 뜰채를 조립하고 있다.
한쪽에서 뜰채를 조립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뜰채를 담글 자리 근처에 미끼를 뿌리며
근처의 물고기들을 꼬시고 있다.
뜰채를 담그고 그 위에 충분히 미끼를 뿌려준 뒤 물고기들이 몰려들기를 기다린다.
십여분쯤 지났을까? 뜰채를 들어올려보지만 헛탕이었다.
우리 일행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과연 저렇게 해서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요?"
"차라리 어제처럼 낚시를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자리를 잘못 잡은것 같다며 장소를 옮겼다.
또 같이 뜰채를 조립하고 물속에 담갔다.
"자, 잘 보고 있어요."
"어어, 온다 온다!!"
우와! 아까와는 달리 제법 많은 고기들이 뜰채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자, 같이 들어올려요!"
뜰채의 그물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순간 '파닥파닥파닥' 은빛의 반짝거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신기한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한번 동요하기 시작했다.
"낚시질은 헛빵이네요."
"그러게요 이거 한방이면 끝인데..."
이날 잡아올린 물고기도 대부분은 전갱이였다.
"오늘은 이 자리돔을 좀 잡아서 해드릴려고 했는데 별로 없네요."
옆방 학생들이 아저씨가 갯바위에서 따온 것들을 담아놓은 통을 신기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
고동, 따개비, 거북손등을 제법 많이 따오셨다.
"식사 하시고 간식으로 삶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이날 아침엔 또 조금전에 잡은 전갱이 매운탕과 볼락 회로 푸짐한 아침을 먹었다.
"이런 식사나 체험들은 저희들을 위한 건가요? 아니면 누구나 다 경험 할 수 있는건가요?"
"아닙니다. 저희 집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다 똑같이 해드립니다. 다른데도 비슷합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민박집 안주인께서 아까 그 고동을 삶아서 내주셨다.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거제도로 나가야 했는데 배를 기다리는 동안 야금야금 고동을 파 먹었다.
이런데 와서 먹으니까 정말 별게 다 맛있었다.
배를 타려고 선착장에 내려왔는데 저만치에서 자맥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보였다.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이기 때문일까, 이런 모습은 늘 새삼스럽고 진귀한 풍경처럼 느껴진다.
'아, 정말 지심도에도 해녀가 있구나.'
지심도는 내가 지금껏 여행했던 우리나라의 다른 섬들과는 또다른 느낌의 섬이었다. 이 단편적인 여행기가 보는이에게 지심도를 어떤 모습으로 비춰줄지 궁금하다. 지심도는 화려하고 예쁜 풍경이나 잘 갖춰진 시설들을 선호하는 여행자에게 권할만한 곳은 아니다.
매년 12월 부터 이듬해 4월까지 동백꽃이 온 섬을 뒤덮는 다고 해서 동백섬이라고도 부른는 이 섬의 '지심도'라는 이름은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닯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섬을 떠나 올때 '이름 참 잘지었네' 하고 생각했다. 번잡한 생활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아무생각 없이 하루이틀 머리를 식히다 보면 마음도 홀가분하게 비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오는 섬, 처음 그대로의 자연과 생명들을 간직한 섬, 섬이 섬다운 섬에서 보낸 긴 하루를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글|사진 잠든자유)